“유럽이란 무엇인가”. 그 동안 정치학이나 지역연구에서 유럽에 대한 문제의식은 권력/국가/영토, 또는 시장/발전/자본 등 정치와 경제의 논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민족국가와 제국, 자본주의와 지역통합, 그리고 유럽연합(EU)이 유럽 지역 연구의 핵심적 과제로 등장했던 이유다. 이 연구는 근․현대에 국한된 논의의 범위를 멀리 중세 및 고대까지 확장해 보려는 시도다. 그럼으로써 장기 역사의 깊이를 끌어안은 유럽을 포착하려는 지역 연구의 도전이다. 이를 위해 ‘문명’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유럽에 접근한다. 물론 문명론은 자칫 본질주의나 문화중심주의의 덫에 걸리기 쉽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그물’이라는 유연한 이미지를 활용하여 다양한 문명의 층위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려는 노력을 전개한다. 당연히 유럽 문명의 모든 차원을 포괄할 수는 없지만, 언어, 종교, 표상, 음악, 대학, 지배, 전쟁, 도시, 자본, 평등, 교류, 축구 등의 주요 그물을 장기 역사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유럽이라는 문명의 양상을 그려내려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