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창룡(서울대학교 한국정치연구소) |
2000년대에 들어 프랑스의 대통령 권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개헌이 두 차례 진행되었다. 대통령 임기 단축을 둘러싼 오랜 논의는 2000년 임기 5년제 개헌으로 결실을 맺었다(제15차 개헌). 이어 2008년에는 행정부 권력을 제한하고, 실질적인 의회 권한을 확대한다는 취지의 헌법 개정이 진행되었다(제24차 개헌). 두 개헌 모두 표면상으로 기존 제5공화국 헌법에 보장되어 있던 대통령의 권력과 임기를 제한하고, 보다 안정적인 의회정치 제도화를 시도하는 개혁이었다. 그러나 현재 개헌의 실질적인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그리고 논란의 중심에는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2007년 대선에서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고질적인 저성장, 실업률 증가 등의 경제위기를 해결할 만한 추진력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집권 직후부터 분권화 흐름에 역행하여 행정 권력을 집중시켰다는 비판받아 왔다. 무엇보다도 사르코지는 프랑스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2010년도 민주주의 지표에서, 프랑스는 이탈리아와 함께 ‘완전 민주주의’(full democracy) 수준에서 ‘결손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수준으로 동반 하락했다. 때문에 2008년의 개헌을 바로 사르코지가 주도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제24차 헌법 개정에는 “제5공화국 정치제도의 현대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으나, 프랑스 국민과 언론은 연일 ‘거수기 의회’(chambre d'enregistrement )의 부활을 우려했다. 이하에서는 분권 개혁의 내용과 현실 간의 이러한 간극이 어떻게 발생했는가를 살펴보고, 그 함의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제24차 개헌과 의회 합리주의 개선
제24차 개헌은 제5공화국 헌법의 주요 원칙 중의 하나인 ‘의회 합리주의’ 혹은 ‘합리화된 의회주의’를 완화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합리화된 의회주의란 제5공화국 설립 당시 극단적인 행정부의 불안정을 극복하기 위해 의회를 약화시키는 조치였다. 이는 제4공화국(1946-1958) 시기 군소정당의 난립으로 행정부가 무력화되었던 경험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했다. 불신임투표의 제한, 의회 입법의 제한, 대통령령을 통한 입법, 법안 신임투표 결의 권한 등이 의회 합리주의의 취지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제5공화국의 의회 합리주의는 일반적인 대통령제 이상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을 집중시키거나 대통령과 수상의 권한을 분명하게 구별할 수 없는 부작용을 낳았으며,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사르코지는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2007년 대선 캠페인에서 현대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그는 2007년 3월 르몽드지에 “완전무결한 민주주의(Une démocratie irréprochable)”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서, “공화국의 대통령이 실제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모든 제도를 통제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의회의 입법 활동과 대정부 통제 활동에 더 많은 독립성을 부여해야 한다.”며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 균형 필요성을 역설했다( Le Monde 2007/3/8). 당시 다수의 후보들이 의회 권력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제6공화국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논의를 진행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사르코지의 발언이 특별한 공약은 아니었다. 그러나 행정 권력의 제한에 대한 요구가 대체로 좌파 정당들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르코지의 권력 분산 개혁안 수용은 이례적 사건이었다. 사르코지 집권 이후 헌법 개정작업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2007년 7월 18일 대통령령에 의해 발라뒤르(Édouard Balladur) 전 수상을 위원장으로 한 ‘제5공화국 제도의 현대화와 균형 복원을 위한 심의 및 제안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사르코지는 제5공화국 정부형태가 대통령제로 진행되는 것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견제하며 의회권한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정치 토론 문화를 활성화하고, 사법부의 독립을 강화할 수 있는 개혁안을 요구하였다.
심의위원회의 헌법개정안은 2008년 7월 21일 헌법 제89조에 따라 양원합동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의결 ? 승인되었다. 제24차 개헌은 헌법 47개 조항을 수정하는 대대적인 개헌이었으며, 대통령 중임제 도입, 대통령의 임명권과 사면권 제한, 대통령의 긴급권 행사에 대한 통제 강화, 의회 입법사항 확대 및 결의안 채택권 부여, 해외파병에 대한 의회 통제권 강화, 행정부의 법안 수정권 제한, 의회 의사일정 작성권 부여 등의 내용을 포함하였다. 과거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국민투표 회부권(제11조), 긴급권(16조), 신임투표권(제49조)의 개정 사항을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민투표 회부권(제11조)의 경우 2008년 개정 전까지 제1항에 다음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대통령은 의회의 회기 중 관보에 공표된 정부의 제안 또는 양원의 공동제안에 따라, 공권력의 조직에 관하거나, 공동체의 결정의 승인을 필요로 하거나, 헌법에 위반하지는 않으나 제도의 기능에 영향이 있을 조약의 비준을 동의함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법률안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대통령이 국민투표 회부권을 발동함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나, 공권력의 조직 범위와 헌법의 합치여부에서 매우 모호한 기준을 제시하여 대통령에게 많은 재량의 여지를 남겨 두고 있었다. 그러나 제24차 헌법 개정에서 제11조는 ‘공동발의 국민투표'의 형태로 전환시켜 국민투표가 더 이상 대통령의 독점적인 권한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하였으며, 의원발의 형태로도 국민투표가 가능하도록 했다. 나아가 동일 법률안이 2년 내에 다시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것을 금지하였고, 헌법위원회가 법률안에 대해 적법성 검토를 하도록 하여 국민투표회부권이 남용되는 것을 차단하였다.
다음으로, 제24차 헌법개정은 헌법 제16조 대통령의 긴급권에 제한조치를 추가하였다. 긴급권은 제4공화국 헌법에서 삭제된 조항이었으나 제5공화국 헌법에서 부활하였고, 드골은 1961년 긴급권을 발동하여 1962년의 직선제 개헌을 통과시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후에도 긴급권과 관련된 위협의 판단 기준, 여타 국가기관의 개입 봉쇄, 긴급권 발동의 종료시점 문제 등과 관련된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제16조는 상황의 긴급성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질적인 제약으로 작용하지 않으며,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행정 권력이 무제한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심각한 남용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4차 헌법 개정에서는 “비상권한 발동기간이 30일이 지나면 국민의회의장, 상원의장, 60인의 국민의회의원 혹은 60인의 상원의원은 제1항에서 명시된 조건들이 여전히 충족되었는지에 대한 평가를 헌법위원회에 제기할 수 있다. 헌법위원회는 최단기간 내에 의견을 공표한다.”라는 조항을 덧붙여 대통령의 예외적인 권력행사의 기간과 제한방법을 명시했다.
마지막으로, 제24차 헌법 개정은 역대 대통령들이 앞의 두 권한보다 보다 빈번하게 활용했던 헌법 제49조의 신임투표 권한을 제한하였다. 과거 신임투표 권한은 사실상 정부가 의회를 장악하는 사실상의 강력한 무기였으며, 여당이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야당에 대한 정부의 효과적인 압력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제49조 3항은 “수상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친 후에 하원에 의안표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걸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의회 투표를 거치지 않고 법을 제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었다. 모든 경우 수상은 그러한 결정을 단독으로 할 수 없으며 국무회의를 거쳐야한다는 제한조건이 명시되어 있으나, 정부의 책임이 걸리는 만큼 결국 국무회의는 형식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대통령의 정당이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경우 국무회의 의견은 대통령의 입장을 따르게 되므로, 이 조항은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절대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었다. 제24차 개헌은 수상이 정치적 책임을 회부할 수 있는 대상을 일반 법률안이 아닌 “제정법률안과 사회보장자금조달법률안”으로 국한하였고, 신임투표 회부 횟수를 회기별 1회로 제한하여 49조 3항의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였다.
3. 제도 운용의 현실: 강한 대통령의 부활
2008년 제24차 헌법 개정의 영향으로 사르코지는 역대 대통령들이 의존하였던 헌법상의 주요 특권들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사르코지는 집권 이후 의회해산권과 국민투표회부권 등을 실제로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나아가 피용 내각은 조스팽 내각(1997-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49조 3항의 수상 신임연계 투표권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이러한 측면에서 제24차 헌법 개정의 취지대로 프랑스에서 ‘합리화된 의회제’가 지양되고 의회 권력 회복이 현실화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회의 관계 측면에서 조망한다면, 의회에 대한 행정부 혹은 대통령의 영향력은 크게 줄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여기서 사르코지 대통령의 집권 이후 의회와 정당정치가 다시 질식당했으며,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었던 ‘거수기 의회’ 현상이 부활했다는 비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문제는 제24차 헌법 개정 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다른 권한들을 통해 대통령의 의회통제가 가능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법안 인플레이션 현상, 의회 의사일정에 대한 빈번한 개입, 긴급절차의 남용 등의 세 측면이 주요하게 지적된다.
먼저, 법안 인플레이션은 의회에서 다루어야 할 법안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러한 법안 과잉 제출 경향은 사르코지 집권 이전까지의 프랑스 의회에서도 관찰되었기 때문에, 사르코지 국정운영의 직접적인 결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자들은 사르코지가 언론의 1면을 장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로운 법안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을 비판해 왔다. 사르코지의 임기는 끊임없는 정책 발표와 입법의 과정이었다. 사르코지의 공약과 이행여부를 추적하여 분석한 토마스 모어 연구소(Institut Thomas More)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선거 캠패인 기간 중 총 490개의 공약을 발표했는데, 집권 이후에 오히려 더 많은 832개의 정책을 제안하였다. 연구소의 보고에 따르면, 2012년 3월 7일 현재 전체 공약 중 47.43%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법제화된 반면, 26.93%의 공약은 임기 내에 실현될 수 없는 논의 단계이며 17.47%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다음으로, 대통령령(décrets)에 의거한 의회 의사일정의 불규칙한 진행은 앞서 살펴본 법안의 양적 폭발과 무관하지 않으며, 대통령과 의회의 힘 관계가 여전히 불균등한 상황임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 의회의 경우 연 2회 소집되는 정기회는 6월을 초과할 수 없으며, 의회는 수상이나 국민의회의 재적의원과반수의 요구에 의해서만 임시회를 개의할 수 있다. 하지만 임시회가 대통령령에 의하여 개회 및 폐회될 수 있기 때문에, 의회보다는 행정부가 의회의 의사일정을 결정하는 데에 주도권을 갖는다. 표1에 따르면, 사르코지의 경우 임시회를 총 11회 소집하여, 역대 대통령 중 미테랑 다음으로 의회의 회기에 빈번하게 개입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물론 법안 인플레이션 현상과 임시회 소집 횟수의 증가만으로 행정권력 남용 정도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나아가 역대 대통령 간 단순 비교 역시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이 의회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법 률에 대한 기계적인 표결을 위해서 의회를 소집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Libération 2009/9/15). 특히 임시회기 동안 처리된 법안의 수를 비교할 때 사르코지 국정운영의 특징이 드러난다. 시락 집권 2기와 사르코지의 집권기간, 그리고 현 올랑드 대통령의 각 임시회 별 처리 안건 수를 비교하면 현격한 차이가 발견된다. 세 대통령 모두 대체로 임기 초기에 임시회를 소집하여 여러 안건을 처리했으며, 그 필요성에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사르코지의 경우 임기 후반까지 총 242개 법안, 연평균 약 48개 법안 처리를 임시회를 통해 시도했다는 특징을 보인다(표 2 참고). 사르코지의 임기 후반 개혁을 둘러싼 계층 간, 집단 간의 갈등이 고조되었던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비공식 경로의 입법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마지막으로, 사르코지는 ‘신속절차’(procédure accélérée)에 의존하여 주요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신속절차는 헌법 제45조에서 명시하는 권한으로 제24차 개헌에 포함되지 않은 사항이다. 일반적인 입법과정에서 프랑스의 상원과 하원은 법안에 대해 각각 제2독회를 거친 후 표결에 들어가도록 되어있으나, 헌법 제45조는 수상의 권한으로 양원합동위원회를 구성하여 제1독회만을 거쳐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는 신속절차를 보장하고 있다. 사르코지는 집권 첫 해인 2007년 채택된 117건의 법안 중(국제 조약과 관련된 법안은 제외) 약 60%의 법안을 ‘신속절차’에 의해 통과시켰다( Le Monde 2010/1/27) . 사르코지는 주요 사회정책 법안들을 수개월 만에 통과시켰으며, 이는 정책을 실행하는 대통령의 강한 추진력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러나 신속절차의 남용은 대중운동연합(UMP)의 여당의원들에게도 원성을 샀다. 하원의장인 베르나르 아쿠와이에(Bernard Accoyer)는 2009년 피가로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속절차의 사용이 의회 개혁 작업과 양립할 수 없다면서 “신속절차는 반드시 예외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사르코지의 대통령 취임 이후 법안의 50%가 신속절차를 거치는 현실에서 의회 역할이 여전히 박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Le Figaro 2009/5/18).
표1. 프랑스 역대 대통령의 임시의회 개회 횟수 *
역대 대통령(임기) | 임시의회 개회 대통령령(décret) 발의 횟수 |
Charles de Gaulle (1959.8.-1969.4.) | 9 |
Georges Pompidou (1969.6.-1974.4.) | 2 |
Valéry Giscard d'Estaing (1974.5.-1981.5) | 5 |
François Mitterand Ⅰ(1981.5.- 1988.5) | 18 |
François Mitterand Ⅱ (1988.5 - 1995.5) |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