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차이와 유럽통합
노명환(한국외국어대학교)
유럽의 각국별 문화차이와 유럽통합과 관련하여 아주 편견에 찬 재담이라 할 수 있는 다음과 같은 농담이 있어 왔다. '유럽합중국에서 엔지니어는 독일인, 요리사는 프랑스인, 경찰은 영국인, 낭만의 연인은 이탈리아인, 행정가는 덴마크인이 된다면 그것은 환상의 유럽통합이 될 것이다. 반대로 엔지니어는 프랑스인, 경찰은 독일인, 요리사는 영국인, 낭만의 연인은 벨기에인, 행정가는 그리스인이 된다면 그것은 최악의 유럽통합이 될 것이다.' 분명 이는 편견에 찬 피상적인 농담으로서 깊은 관심을 쏟을 내용은 아니다. 그런데 이를 가치 판단의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다양한 국민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측면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최근 그리스를 비롯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와 함께 그 원인으로서 생활방식의 문화가 지적되기도 했다. 미래를 위해 일을 많이 하고 저축하기 보다는 현재 즐겁게 사는 데에 보다 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그리고 일의 논리보다는 인간의 관계 속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남유럽인들의 생활방식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농담에서 보면 낭만의 연인, 엉망의 행정을 하는 그리스인 그리고 요리사 프랑스인이 묘사되어 있다.
유럽을 북유럽과 남유럽으로 나누어서 비교해 보면 북유럽은 게르만족 문화전통, 개신교문화권, 춥고 햇볕이 적고 비가 많이 오는 변덕스러운 기후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남유럽은 그리스·로마 문화전통, 가톨릭문화권, 따뜻하고 햇볕이 많은 지중해성 기후에 속한다. 개신교 문화권에서는 근면·검소 및 직업소명관의 종교윤리가 강하게 뿌리내리게 되었고 가톨릭 문화권에서는 가족 및 인간관계가 중요시되는 전통이 계속 강하게 자리 잡았다. 기후의 차이와 그리스·로마 문명의 영향 유무가 또한 남유럽 사람들의 낙천적인 성격과 북유럽 사람들의 주도면밀한 계획적 삶의 특징을 구별 짓게 한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위의 농담은 일정 부분 현실적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가 삶의 방식, 즉 문화에 대한 가치판단과 연결될 수는 없다. 어느 방식이 더 좋고 나쁘고 하는 가치판단을 부여할 수 없다는 말이다. 최선의 유럽통합과 최악의 유럽통합을 문화에 대한 가치판단과 함께 논할 수 없는 것이다. 문화는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하고 그 차이를 넘어서는 커뮤니케이션은 상호이해를 위한 노력 속에서만 가능하다. 유럽 차원의 투명사회, 재정 건전성 등은 문화의 차이라는 숙명론에 의해 체념할 것이 아니라 상호 이해를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실현될 수 있다. 그러한 의지로 제도를 만들며 제도는 또한 문화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유럽통합의 목표는 대단히 그 가치가 크다. 지금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문회에 대한 가치 서열화는 아마 자본주의라는 단 하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