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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럽학회 2012년 제3호 E-Newsletter _회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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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노벨평화상과 유로존 재정위기
 
이종원(수원대 교수, 한국유럽학회 이사장)
EU가 201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유럽재정위기 속에서 받은 상이니 유럽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그리스나 스페인 등지에서 시위가 날로 격해지고 있으며, 영국의 집권 보수당은 EU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니 EU 노벨상 수상에 대해 말이 많은 것에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노벨위원회는 “EU가 유럽대륙 화합을 위해 힘써온 점을 높이 평가했다”면서 “EU가 베를린 장벽붕괴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유럽의 평화와 인권증진을 위해 노력한 점과 민주주의를 강화한 공로를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60여 년 간 유럽의 다자주의 외교가 역내 평화구축에 기여해 온 점, 즉 다자주의의 유용성을 인정한 것이다.

 

중동평화나 아시아 인권 그리고 남북한 화합 등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다른 수상자와 견주어 볼 때 그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수상시기가 너무 늦어져 작금의 재정위기와 맞물려 그 빛이 바랜 것은 사실이다. 오늘날 유럽의 경제위기는 확실히 심각하다.

 

1990년대 말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언한 노벨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그리스가 거의 확실하게 유로존을 떠날 것이며, 그것은 금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단언한다. 제프리 삭스와 누리엘 루비니 등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시간문제이며,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갑자기 일어날 수도 있다고 호언하였다.

 

많은 저명한 영미권 학자들이 논리적이면서도 화끈한 해법을 연일 제시하며 ‘유로’라는 제3의 통화는 잘못된 선택이었으며, 그리스와 독일은 잘못된 만남을 가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낭비벽이 있고 게으른 아내와 헤어지라고 부추기는가. 술만 먹고 일 안하는 동생을 집에서 쫓아내라고 하는 것인가. 만일 부부라면 갈라설 수도 있는데, 재산분할을 해 주어야 할 것이다. 형제간 이라면, 그들 마음대로 연을 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힘세고 부지런한 형은 전쟁을 두 번이나 일으켜 유럽을 잿더미로 만드는 동안 동생은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에서 구소련으로부터 또 터키로부터 유럽을 지켜내지 않았던가. 이제 그리스가 러시아와 중국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동방정책을 취해야 할 것인가. 유럽은 이를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통합 60년의 노력과 성과는 도로묵이 되기 싶다.

 

일찍이 EU는 또 다른 전쟁의 위협을 피하고 유럽대륙에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기 위하여 경제라는 신기능주의 수단을 통해 부단한 노력을 한 결과, 미국과 소련의 틈바구니에서 살아 남았고 미일과의 경제전쟁에서도 버텨 이제 미-중-EU 삼각축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만일 EU가 없었다면 오늘의 번영도 독일의 통일도 불가능했을 것이며, 유럽은 소국들의 집단으로 세계의 주역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과거의 영광을 회상하면서 말이다. 60년대 말 관세동맹과 공동농업정책을 70-80년대에는 유럽통화제도를 그리고 90년대에는 단일시장을 완성하고, 드디어 2000년대 초 단일통화시스템을 가동시켰던 것이다. 단일통화 실시에 많은 무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유럽통합의 안정을 위해 최적통화지역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독이후 Pax Germanica라는 제3 제국의 출현을 막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전술전략도 발휘되었다. 우리 경제학자들의 셈법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고차원적 정치경제적 작품이 바로 ‘유로’이었다. 당시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유로의 비현실성을 지적했을 것이다. 필자 또한 당시 유로는 정치통합의 산물이지 경제통합의 결과가 아니라고 했었다. 미국 쪽에서는 ‘지각변동’이라면서 세계평화를 위협할 달러 vs 유로의 더블헤드 시스템을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의 출발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미국 금융위기 이전까지 물가 등 거시지표도 양호했으며 무엇보다 미국 달러에 대해 지속적 강세를 보여 주었다. 특히, 유로존의 미국발 금융위기 대응이 돋보였다. 그 결과 유로존에 가입하고 있지 않던 영국, 스웨덴, 덴마크 3국에서도 유로채택을 고려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비 EU 국가인 스위스에서까지 EU 가입 여론이 긍정적으로 조성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 촉발된 금융위기의 후유증으로 세계적인 금융경색이 일어나자, 유럽 소국인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에서 먼저 신용위기가 그리고 채무대국 그리스에서 국채이자 상승으로 인한 재정위기가 본격화 되었으며, 이는 당시 부동산 버블의 스페인으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ECB(유럽중앙은행)의 재정형편으로 소국들의 문제는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유럽 대륙의 몸통인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무리하다가는 자칫 모두 물에 빠져 유로존이 해체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EU 정상회의는 머리를 맞대 유로존 재정위기의 해법을 논의 하였다. 해법의 첫째는 은행동맹이다. 공동으로 은행을 감독하고 또 예금을 보증하는 역할을 개별국가가 아닌 EU차원에서 행함으로써 민간은행의 부실을 사전에 예방하며, 나아가 ESM(유럽안정화메카니즘)이 부실은행을 직접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둘째는 재정동맹이며, 셋째는 GDP 1%의 성장펀드조성이다. EU 정상회의는 유럽은행 직접지원, ESM의 재정위기국 국채매입, 그리스 긴축프로그램 조정 그리고 유럽 은행 감독기구 설립 등에 합의하였다.

 

한편, 독일의 책임론과 리더십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며 EU는 언젠가는 연방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 의회 또한 긴축안을 어려운 여론 속에서도 받아드렸다.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직 여러 차례의 크고 작은 파동이 언제 다시 요동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 끝이 한 걸음 두 걸음 앞으로 다가온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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